나를 채운 조각들 | 베르너 헤어초크
영화감독 베르너 헤어초크(Werner Herzog)를 롤모델로 삼고 살아왔다. 스무 살에 처음 그에게 반한 이후로, 가장 좋아하는 예술가를 딱 한 사람만 뽑으라면 항상 베르너 헤어초크 얘기를 했다. 뭐가 그렇게 좋냐고 하면 책 한 권은 쓸 수 있을 것 같다.
헤어초크는 대학에서 잠시 영화 만들기 수업을 한 적이 있다. 한 학생이 영화 만드는 일을 주저하고 있었다. 헤어초크는 그에게 “만약 당신이 작품을 만든다면 당신 앞에서 내 구두를 먹겠습니다”라고 약속했다. 그 학생이 바로 〈천국의 문(Gates of Heaven)〉이라는 영화를 만들어 데뷔한 에롤 모리스(Errol Morris) 감독이다. 헤어초크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청중 앞에서 구두를 삶아 먹었다. 헤어초크가 구두를 먹는 장면이 〈헤어초크, 구두를 먹다(Werner Herzog Eats His Shoe)〉라는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1974년 11월, 헤어초크는 자신의 대학교 은사이자 전후 독일 영화의 정신적 지주였던 영화 평론가 로테 아이스너(Lotte H. Eisner)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러자 헤어초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그녀는 죽을 수 없다. 아직 내 영화에 출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독일 뮌헨에서 그녀가 입원해 있는 파리 병원까지 걸어가면 그녀는 죽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선언한 헤어초크는 혹독한 겨울 날씨를 뚫고 22일 동안 도보로 이동하여 병원에 도착했고, 신기하게도 로테 아이스너는 몇 년을 더 살았다고 한다. 그녀는 나중에 헤어초크의 다큐멘터리 영화에 목소리로 출연했고, 로테 아이스너가 다시 위독해졌을 때는 헤어초크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영화에 출연했으니 이제 죽어도 된다고 했다나?
나는 헤어초크의 약속을 좋아한다. 헤어초크는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다. 그의 약속은 주술이며, 응원이며, 마법이고, 예술이다. 헤어초크의 약속은 언제나 사람을 위한 것이며, 결국 영화를 위한 것이다.
나는 헤어초크가 되고 싶다. 다른 누구도 아닌 딱 그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감수하고 싶은 위험이 예술을 위한 것이기를 바란다. 나는 시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그 믿음은 조금은 과대망상처럼 보일 것이다. 그 편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