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세상의 기획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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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직업은 시인이 아니다 
김승일
2025.8.22
김승일
경기도 과천에서 태어나 한국예술종합학교 극작과를 졸업했다. 2009년 〈현대문학〉 신인 추천으로 시단에 나왔다. 작품으로는 시집 〈에듀케이션〉(2011), 〈여기까지 인용하세요〉(2020), 〈항상 조금 추운 극장〉(2022), 산문집 〈지옥보다 더 아래〉(2024) 등이 있다. 2016년 제19회 현대시학 작품상을 수상했다.
Editor’s Comment
우리는 무엇이든 물으면 곧장 대답해주고, 손쉽게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생성형 인공지능의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질문 ㅡ‘나는 어떤 삶을 원하지?’ ‘무엇이 나다운 선택이지?’ㅡ 에는 그 어떤 프로그램도 대신 답해줄 수 없다. 오직 자기 자신과 마주할 때에만 진실된 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튤립의 에세이 시리즈 ‘나라는 세상의 기획자들’은 이 물음에 주체적으로 응답하며 자기 삶을 기획해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삶의 현장에서 부딪히며 길어 올린 질문과 선택 끝에 피어난 ‘자기다움’의 기록이기도 하다. 이들의 여정이 자기만의 기준을 세우고 싶은 사람들에게 작지만 단단한 좌표가 되어주길 바란다.
시인 김승일의 에세이로 시리즈의 첫 문을 연다. 자본주의와 예술이라는 양 극단 사이를 오가며, 시 쓰기를 ‘직업’이 아닌 ‘신념’으로 붙들어 온 시인. 그는 어떻게 자기 세계를 구축해왔을까? 사랑하는 일을 더 많은 이들과 나누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결코 보폭을 좁히지 않겠다는 그의 고백은 익숙한 현실에 길들여진 우리를 잠시 멈춰 세운다. 이제 시인 김승일의 모험에 당신을 초대한다.
내 직업은 시인이 아니다 
나는 시인이다. 나는 사람들에게 나를 시인이라고 소개한다. 하지만 누가 내게 직업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백수’라거나 ‘한량’이라고 대답하는 것을 선호한다. 시를 써서 돈을 벌기는 한다. 산문 청탁도 받는다. 아카데미에서 시 창작을 가르쳐서 돈을 벌기도 한다. 미술이나 연극 작업 같은 다른 예술 장르에 시인으로 참여하여 돈을 벌기도 한다. 부모님이 유산을 물려주었거나 복권에 당첨된 것은 아니다. 글을 쓰지 않으면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 그런데도 나는 내 직업을 시인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나도 예전에는 내 직업을 시인이라고 소개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어쩌면 종종 방송에 출연하곤 하는 유명한 시인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책이 너무 많이 팔려서 한국에 나를 모르는 사람보다 아는 사람이 더 많기를 바랐다. 좋지 않은가? 저는 ‘전업 시인’입니다. 이렇게 나를 소개해도 거짓이 아니기를 바랐다.
처음 낸 시집 〈에듀케이션〉은 인기가 좋았다. 한국 사람이면 다 아는 시인이 된 것은 아니지만,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름을 들어본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계속 시집을 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다음 시집, 다다음 시집을 낼 수 있었다. 나는 내가 낸 첫 시집보다 후속 시집들이 훨씬 더 마음에 들었지만, 판매량은 계속 떨어졌다.
이렇게 요약하면 모든 것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처럼 보인다. 하지만 2009년에 시인으로 데뷔한 뒤 벌써 16년이나 흘렀다. 정말 많은 것이 변했고, 꽤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딱 하나 변하지 않은 것은 내가 시 쓰기를 아직도 너무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더 좋아하게 된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나는 8년 전쯤 내 시가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아버렸다. 조금만 더 일찍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어쩌면 시를 처음 썼을 때부터 이미 알고 있었을 텐데. 자의식 과잉이 너무 심했던 것 같다.
우는소리만 하려는 건 아니다. 나 정도면 운이 좋다는 걸 안다. 첫 시집은 아직도 계속 팔리고 있고, 시 창작 수업도 항상 모집이 잘 된다. 내 시가 제일 웃기고 슬프다고 말해주는 독자들도 종종 있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은 잦아들지 않는다. 항상 다음 달 카드값이 걱정되고, 노후가 걱정된다. 내 시가 영영 잊힐까 봐 두렵다.
그렇게 끔찍한 불안 속에서 살아가다가, 내 안에서 결론이 났다. 내 직업을 시인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예술은 직업이 아니다. 단순히 돈을 못 벌어서가 아니다. 예술을 직업이라고 생각하면 예술을 하는 데 방해가 된다. 나는 돈 벌려고 시 쓰는 게 아니다. 돈을 벌고 싶으면 다른 일을 하는 편이 더 수월하다. 그런데 시인을 직업이라고 생각하면 자꾸만 돈 때문에 시를 쓰는 것 같다. 노동은 신성한 것이지만, 시 쓰기를 노동이라고 말하면 어쩐지 죄짓는 기분이다. 예술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이지만, 시인이 직접 시 창작이 가치 있는 노동이라고 말하고 다니는 건 바보 같다. 혹여나 자기 작품에 별 가치가 없을까 봐 괜히 찔려서,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나는 내 직업이 시인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내 직업을 시인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예술을 직업이라고 생각하면 예술을 하는 데 방해가 된다. 
나는 전단 인간이다 
불안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다. 하지만 시 쓰는 데 방해가 되지 않으려면 매일 불안을 청소해야 한다. 모든 예술가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나는 항상 더 유명해지고 싶었다. 모든 사람이 내 시를 사랑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항상 그 소원이 불안을 키운다.
중고등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이다. 중고등학생 때 내가 어땠는지를 기억해야 한다. 친구가 많았나? 적당히 있었다. 단짝 친구가 있었나? 있었다. 그 친구는 내가 쓴 것을 알아봐줬다. 그 친구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해줬다. 당시의 나는 유명한 연예인에게 관심이 별로 없었다. 인디밴드를 좋아했고, 늘 혼자 홍대 라이브 클럽에 공연을 보러 갔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그 친구와 나는 함께 다녔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정말로 좋아하는 친구. 어쩌면 나보다 더 좋아하는 친구는 그 밖에 없었다. 학교에 그렇게 많은 학생이 있었는데, 같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렇게나 희귀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의 멋짐을 사람들이 알아봐주지 않는다는 건 아직도 답답한 일이긴 하지만, 어쩌면 모두가 좋아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나는 더 좋아했던 것 같기도 하다. 당연하게도 내가 쓴 시를 모두가 사랑하기를 바라는 건 불가능한 소원일 것이다. 모두를 감동시키는 시를 쓸 수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다면? 학교마다 한두 명씩은 존재할 내 단짝 친구 후보자들에 어떻게든 내 시를 보여주는 것이 더 현실적인 목표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니 조금 안심이 되었다. 단짝 친구 후보자들을 찾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던 중 나는 내가 쓴 모든 작품을 무료로 인터넷에 게시하기로 마음먹었다. 먼저 completecollection.org라는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사이트의 이름을 한국어로 번역하면 전집(全集)이다. 일기, 시, 희곡, 소설, 헛소리 등 내가 쓴 모든 글을 올리고 있다. 나중에 내가 죽으면 이 사이트를 ‘김승일 시인의 문학 전집’이라고 여길 수 있기를 바랐다. 나는 사이트 설명란에 “내 글을 무단으로 배포해도 좋다”고 써두었다. 혹자는 포스타입, 메일링 등의 구독형 서비스가 엄연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모든 작품을 무료로 게시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을 것이다. 여기엔 많은 이유가 있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내가 예술을 직업으로 여기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내 작품이 상품으로 취급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물론 작품을 사고파는 행위가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작품을 팔아야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고파는 것이 정당화되는 더 많은 이유가 있을 거다. 사실 작품을 소유할 수 있다는 건 부러운 일이다. 조형 예술가의 작품은 조각상을 산 사람이 그 조각상을 소유할 수 있다. 다르게 말하면 어떤 예술가는 자기 조각을 팔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다. 조형 예술가는 “이 조각상은 내 거고, 내 친구라서 다른 사람에게 팔 수 없다”고 선언할 수 있다. 그게 정말 부럽다. 내 생각에 문학 작품은 독자에게 읽히는 순간 물리적인 측면에서 내 거라고 말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이건 저작권의 문제가 아니다. 무언가를 만든 다음, 내가 가질 수 있느냐 없느냐를 말하는 거다. 권리나 책임은 내 것일 수 있지만, 내가 쓴 시는 내 것일 수 없다.
어차피 내 것일 수 없다면 더 많은 사람의 것이면 좋겠다. 책을 구매해야만 읽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인터넷에 퍼진 바이러스처럼 내 시가 돌아다니면 좋겠다. 거리에 뿌려진 대리운전 전단처럼, 가게 홍보 전단처럼. 나는 항상 내 시가 세상을 덮었으면 좋겠다는 망상을 한다. 그래서 어느 시절엔 내 시를 전단으로 만들어 길에서 나눠주기도 했다. 포스터로 만들어 길에 붙이고 다니기도 했다. 이런 퍼포먼스가 나를 더 유명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되려면 내 시가 더 대중적인 호소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 시를 써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시를 쓰는 방법은 모른다. 나는 그냥 내 시를 좋다고 말해줄 친구를 찾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는 것 같다. 기분이 어떠냐고? 너무 좋다. 더 많은 곳에 뿌리고 싶다.
어제는 작은 책방에서 북토크 행사가 있었다. 행사가 끝나고 어떤 분이 내 시집을 가지고 와서 사인을 부탁했다. 사인을 받으시곤 내게 말했다. “저 옛날에 시인님이 길에서 시 나눠주실 때 받았어요.”
우리는 활짝 웃었다. 나는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사람의 사건이 되고 싶다.
인터넷에 퍼진 바이러스처럼 내 시가 돌아다니면 좋겠다. 가게 홍보 전단처럼. 
팔아야 하는 시대, 지켜야 하는 마음 
나는 아주 적극적으로 사람들에게 나를 팔고 있는 시인이다. 요즘은 내가 시인인지 관종인지 스스로도 구별이 잘 되지 않는다. 시인이 왜 그렇게까지 자신을 팔아냐 하냐고? 어느 집단에 속해 있든, 우리는 우리 자신을 끊임없이 팔아야만 한다.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존하기 위해서다. 모든 콘텐츠, 노동, 상업 활동이 결국 자기 자신을 팔도록 요구하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인플루언서는 단순히 동경의 대상이 아니다.
인플루언서가 되기를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은 미래가 불안하지 않거나 강인한 정신을 가진 사람뿐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돈을 많이 벌라고, 시류나 자본주의 시장에 휩쓸리지 않게 정신을 무장하라고 조언하고 싶지는 않다. 그건 조언이 아니라 무리한 요구다. 꼰대나 무리한 요구를 한다. 그럼 21세기 예술가이자 어설픈 인플루언서인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뭐가 있을까?
나는 분기마다 ‘김승일 해체하기’라는 토크쇼를 무료로 열고 있다. 이 행사는 오프라인과 온라인에서 동시 송출한다. 내가 쓴 시를 한 줄 한 줄 소개하고, 왜 좋은지 설명한다. 어디서 썼고, 몇 시에 썼고, 쓰기 전에 뭘 먹었고, 당시에 내 기분이 어땠는지 알려준다. 내용을 친절히 소개하고, 내가 선택한 형식이 어째서 멋있는 건지 자랑한다. 말 그대로 나와 내 시를 샅샅이 해체한다. 내가 ‘김승일 해체하기’를 하는 이유는 내 시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나는 내가 쓴 시가 너무 좋다. 내 시에는 내가 아무리 자세하게 설명하고 자백해도 설명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그 무언가에 대한 믿음이 있다.
나는 내 시가 결코 소진되지 않을 것임을 믿고 있다. 오히려 내가 쓴 시를 신비롭게 포장하거나, 작법을 공개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 같다. 예술가에게 일반인과 다른 뭔가가 있다고 과대 포장하고 싶지 않다. 나는 말할 수 있는 것은 다 말하고 싶다. 내가 나를 해체하고 있으면 관객들이 웃는다. 뭐가 그렇게 슬픈지 훌쩍이는 사람도 있다. 웃겨서 우는 건가? 잘은 모르겠지만 저 사람 내가 좋아하는 걸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얼마나 친해질지는 모르겠지만. 내 고등학교 단짝 친구가 된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인플루언서들은 항상 남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그 말을 얼마나 믿어야 할지는 모르겠다. 우리는 다들 조금씩은 사기를 치고 있으니까.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아끼는 사람들이니까. 하지만 내가 하는 모든 일이 결국엔 나를 홍보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할지라도, 세상에 도움이 되고 싶다. 이렇게 마음을 먹으면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된다. 책임감을 가지면 작품을 쓸 때 도움이 된다. 인플루언서 되기가 생존하기와 같은 말이라면, 책임을 다하기는 안전하게 생존하기에 가까운 말이다.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대로 소비되지 않기 위해선, 진짜 나를 드러내고 지켜야 한다. 비약하자면, 안전하게 살아남기 위해서는 위험을 감수하거나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조금 포기해야만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묻곤 한다. 어떻게 위험을 감수할 거냐고. 어떻게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포기할 거냐고. 잘 살고 싶다는 소망에는 종종 타인이 지워져 있다. 거기에는 나만 존재한다. 그래서 나는 소리 내어 말해보곤 한다. 잘 살지 말아볼까? 나를 부정해볼까? 가혹하게 대해볼까? 내 이미지를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여기 모인 청중을 위해서 떠들어볼까? 더 많이 솔직해져볼까? 그리고 내 시는 바로 그 질문들로부터 출발하곤 한다. 약간은 위태롭지만, 좀 많이 모순적이지만, 나 없는 내 인생을 상상하면서.
잘 살지 말아볼까? 
나를 부정해볼까? 
더 많이 솔직해져볼까?
내 시는 그
질문들
circle mark
로부터
출발하곤 한다.
최근에 나는 사람들 앞에서 라이브로 설명을 하면서 시를 쓰는 강의를 만들었다. 날 것의 과정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건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지만, 시를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내가 시 쓰는 모습을 보고 용기를 얻었으면 했기 때문이다. 내가 고뇌하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안심하거나 자극받기를 바랐다. 벌써 한 달 넘게 강의를 진행했는데 시는 한 편도 제대로 쓰지 못했다. 예상했던 바지만 마음이 조급해진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시 쓰기는 원래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는 일이다. 천재 시인이라도 된 양 우다다다 써나가다가, 변심해서 완전히 다 날려버릴 때. 화면이 나로 꽉 차 있다가, 순식간에 비워질 때. 도자기 깨는 장인의 마음을 알 것 같아진다. 아마 그들도 도자기를 깰 때 가장 행복했을 것이다. 이 행복을 나만 알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우리는 함께 시를 써야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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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채운 조각들 | 베르너 헤어초크
영화감독 베르너 헤어초크(Werner Herzog)를 롤모델로 삼고 살아왔다. 스무 살에 처음 그에게 반한 이후로, 가장 좋아하는 예술가를 딱 한 사람만 뽑으라면 항상 베르너 헤어초크 얘기를 했다. 뭐가 그렇게 좋냐고 하면 책 한 권은 쓸 수 있을 것 같다.
헤어초크는 대학에서 잠시 영화 만들기 수업을 한 적이 있다. 한 학생이 영화 만드는 일을 주저하고 있었다. 헤어초크는 그에게 “만약 당신이 작품을 만든다면 당신 앞에서 내 구두를 먹겠습니다”라고 약속했다. 그 학생이 바로 〈천국의 문(Gates of Heaven)〉이라는 영화를 만들어 데뷔한 에롤 모리스(Errol Morris) 감독이다. 헤어초크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청중 앞에서 구두를 삶아 먹었다. 헤어초크가 구두를 먹는 장면이 〈헤어초크, 구두를 먹다(Werner Herzog Eats His Shoe)〉라는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1974년 11월, 헤어초크는 자신의 대학교 은사이자 전후 독일 영화의 정신적 지주였던 영화 평론가 로테 아이스너(Lotte H. Eisner)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러자 헤어초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그녀는 죽을 수 없다. 아직 내 영화에 출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독일 뮌헨에서 그녀가 입원해 있는 파리 병원까지 걸어가면 그녀는 죽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선언한 헤어초크는 혹독한 겨울 날씨를 뚫고 22일 동안 도보로 이동하여 병원에 도착했고, 신기하게도 로테 아이스너는 몇 년을 더 살았다고 한다. 그녀는 나중에 헤어초크의 다큐멘터리 영화에 목소리로 출연했고, 로테 아이스너가 다시 위독해졌을 때는 헤어초크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영화에 출연했으니 이제 죽어도 된다고 했다나?
나는 헤어초크의 약속을 좋아한다. 헤어초크는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다. 그의 약속은 주술이며, 응원이며, 마법이고, 예술이다. 헤어초크의 약속은 언제나 사람을 위한 것이며, 결국 영화를 위한 것이다.
나는 헤어초크가 되고 싶다. 다른 누구도 아닌 딱 그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감수하고 싶은 위험이 예술을 위한 것이기를 바란다. 나는 시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그 믿음은 조금은 과대망상처럼 보일 것이다. 그 편이 좋다.
Editor. 박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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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일
시인
대표작 <에듀케이션>(2011), <여기까지 인용하세요>(2020), <항상 조금 추운 극장>(2022), <지옥보다 더 아래>(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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