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농구선수 오재현: 
덤벼라 인생아 

몸 사리지 않고 온몸을 내던지는 인생에 대하여 
김윤혜
2025.5.23
오재현농구선수
1999년생, 한양대학교 졸업, 서울 SK 나이츠 소속 
2020년 KBL 신인 드래프트에서 서울 SK 나이츠에 지명되어 입단 후, 
2024년부터 대한민국 국가대표 농구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주요 수상 내역
  • 2024 정관장 프로농구 최우수 수비상 
  • 2021 현대모비스 프로농구 신인 선수상 
모든 운동선수는 둘로 나뉜다. 몸을 사리는 선수, 그리고 온몸을 내던지는 선수.
온몸을 내던지는 선수는 선수 가치를 보존하려는 구단과 에이전트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1분 1초라도 더 뛰기 위해 발악한다. 그것이 승부사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경기를 뛸 때도, 연습을 할 때도 ‘왜 저렇게까지 하는 거야’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게 만든다. 그들은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걱정시키고, 그리고 사랑하게 만든다. 응원하게 만든다. 우리는 그들의 갸륵함, 지극함에 속절없이 압도된다.
오재현은 어느 쪽이냐고 하면 후자다. 그는 몸을 사리지 않는 선수다. 위축될 법도 한 가정 형편, 프로 선수라면 피할 수 없는 부상, 그리고 그의 장래를 의심하는 경기장 밖의 평론가들까지. 오재현에게는 유독 시련이 많았는데, 그는 그 무엇에도 지지 않았다.
KBL SK나이츠의 가드인 그는 ‘결국은 해내는 인간’이다. 2020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에 지명되며 조용히 출발했지만, 데뷔 첫해 KBL 신인 선수상을 수상하며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불과 5년도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치열하기로 소문난 국가대표팀에 발탁됐고, 최우수 수비상을 수상했고, 이제는 KBL에서 가장 주목받는 위치에 자신의 자리를 확보했다.
내 꿈을 비웃고 의심하는 이들에게, 상처받은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오재현의 말에 귀 기울여 보자. 냉소적인 평론, 정열적인 악플을 뒤로하고 ‘최강 멘탈’로 거듭난 그가, 바로 당신이 오랫동안 찾아 헤맨 스승일지 모른다.
Contents
1
‘노력’하면 오재현 
2
승리를 위한 노림수 
3
사랑받는 동료의 비결 
4
은혜를 갚는 사람 
5
대가를 치를 각오 
Chapter 1‘노력’하면 오재현 
초창기 때 상대 팀 감독이 ‘오재현 쟤는 막을 필요 없다’는 말까지 했다면서요? 이제는 KBL에서 오재현을 모르는 사람이 없죠. 프로 생활 고작 4년 만에 어떻게 이런 눈부신 성장을 한 거죠?
노력이죠. 정말 간절히 노력했어요.
학생 때부터 노력의 아이콘으로 유명했다고 들었어요.
아, 그때는 좀 심하긴 했어요. 훈련하면 꼭 토를 했거든요.
토했다고요?
네. 운동할 때 오버페이스를 하면 토를 하잖아요. 너무 많이 뛰면 선수들은 토를 하게 되거든요. 저는 체육관 운동만 하면 거의 매일 토를 했어요. 훈련 때마다 한계치를 넘으려고 했던 거죠.
보통 코치님들은 선수가 힘들다고 해도 꾀병이라고 생각하실 때가 많거든요. 그런데 저는 제가 알아서 토할 때까지 뛰니까, 코치님들이 저는 그냥 두셨어요. 쟤는 냅둬도 알아서 한다고요.
역류성 식도염 생기겠는데요?
오, 맞아요. 진짜로 저는 늘 달고 살았어요.
근데 프로 선수들은 다 열심히 하지 않나요? 전희철 감독님도, SK 구단 관계자분들도 ‘노력은 오재현이 우주 1등’이라고 하신다던데, 뭘 했길래 그런 말들이 나올까 호기심이 생기더라고요.
저도 그런 얘기 많이 해요. 열심히 하는 건 당연한 건데, 왜 자꾸 열심히 하는 게 부각되는지 모르겠다고요.
오재현 선수는 뭐가 다르다고 하시던가요?
감독님께서는 “보통 애들은 나한테 잘 보이려고 운동을 한다. 근데 얘는 자기가 진짜 잘하려고 운동하는 게 눈에 보인다.” 라고 하시더라고요. 그게 뭐지? 전 잘 모르겠지만요.
프로 선수라고 해도, 보통 자기한테 기회가 안 오면 쉽게 놔버린다고 하시더라고요. 올해도 틀렸구나 싶으면 해이해지는 경우가 많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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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오재현 선수는 보여주기 위한 운동은 안 하세요?
당연하죠. 저는 오히려 몰래 운동하고 그랬어요. 신인 때는 ‘잘 보이려고 저런다’는 오해도 받았거든요. 그런 오해가 싫어서 감독님, 코치님 안 보시는 새벽이나 저녁에 했죠. 저는 그냥 순수하게, 제가 잘해서 감독님이 경기에 투입해 주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운동해요.
Chapter 2승리를 위한 노림수 
농구에서 가드 포지션은, 공의 흐름을 다루는 ‘노련미’가 필요한 자리이고, 또 선수층도 두터워서 주니어에게는 기회 자체가 잘 오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오재현 선수는 굉장히 빠르게 엔트리 멤버가 됐습니다. 어떻게 기회를 잡았나요?
맞아요. 가드 자리는 정말 기회를 얻기 힘들어요. 전 운이 정말 컸죠.
한 번은 저희 팀이 갑자기 30점이 박살 난 적이 있었어요. 원래대로라면 제가 절대로 뛸 수 없는 게임인데, 어차피 승부가 결정 난 상황이라 “야, 너 뛰어라” 하고 내보내 주셔서 제가 출전하게 된 거예요. 사실상 버린 경기였는데, 제가 거기서 너무 잘해 버렸어요. 그래서 그다음 경기에 “너 주전으로 한 번 뛰어봐” 하셔서 한 번 또 뛰어봤는데, 그렇게 나간 세 경기를 제가 다 잘한 게 시작이었어요.
일생일대의 기회였군요. 보통은 긴장해서 실력 발휘가 잘 안되고 그럴 것 같은데.
프로에 왔지만, 2라운드 지명이었기도 하고 저는 학생 때부터 늘 벤치 멤버였거든요. 오랫동안 너무 간절하게 운동했기 때문에, 경기 뛰고 싶다는 마음이 정말 컸어요.
기회가 왔을 때 연습을 시작한 게 아니라, 그냥 꾸준히 해왔기 때문에 들어갈 때부터 자신 있었어요. 그때는 긴장보다는 ‘우와 드디어 왔구나, 뭔가 보여줘야겠다’ 이런 마음이었죠.
다행히 수비는 기복이 덜해요. 슛이라면 보여주겠다는 마음이 방해가 됐을 것 같아요. 근데 전 수비니까, ‘그냥 했던 것만 보여주고 싶다. 열심히만 하면 잘할 수 있다’ 생각했어요.
왼손잡이라고 들었어요. 왼손잡이 선수가 농구에서 흔한가요?
드물죠. 거의 오른손 많이 써요. 확실히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 같아요. 보통 선수들이 오른손잡이에 맞춰 대비를 많이 하거든요. 맞붙을 때 예측이 잘 안된다고 하더라고요. 강점이라는 생각 많이 해요.
오른손으로 바꿀까 고민한 적은 없었나요?
중 3 때 어떤 코치님이 오른손으로 바꾸면 어떻겠냐고 하시더라고요. 슛 더 잘 넣을 수 있게요. 고민이 돼서 다른 분들께도 여쭤보고 했는데, 그 메리트 있는 왼손을 왜 바꾸냐고 절대 바꾸지 말라고 얘기해 주신 분들이 계셨어요. 지금 생각하면 큰일 날 뻔했죠, 바꿨으면.
오재현 선수가 노력도 노력이지만, 전략가스러운 면모가 많다고 느꼈습니다. 자유투 슛폼도 특이하다고요.
보통은 링에다 바로 넣어야 되는데, 저는 대학 때부터 백보드에 맞춰서 넣는 뱅크슛을 했거든요. 성공률 좋았어요. 그렇게 하니까 90% 이상 나오더라고요. 원래는 자유투 성공률이 50%대였거든요.
프로를 왔는데 주변에서 바로 넣어야지 그게 뭐냐, 한 번에 쏙 넣는 클린슛으로 넣으라고 하더라고요. 선수들 사이에서는 보통 백보드 맞춰서 넣으면 멋없다 이런 말 많이 하거든요. 그래서 클린슛으로 바꿨는데 또 성공률이 쫙 떨어지더라고요. 안 되겠다 싶어서 3년 차 때부터는 다시 뱅크슛으로 돌아갔죠. 그러니까 매 시즌 80% 이상 넣게 되더라고요.
우리나라도 그렇고, 미국도 클린슛을 고집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들었어요.
근데 클린슛만 고집하면 성공률 높기가 힘든 것 같아요. 실제로 제 말 듣고 팀에서 뱅크슛으로 바꾼 사람이 두 명 있거든요. 다들 진작에 바꿀걸, 그래요. 폼도 폼이지만 슛을 성공시키는 게 더 중요하니까요.
와, 막내라인인데 형들한테도 바꾸라고 하는 거예요?
워낙 친해요. 저희는 팀 문화 자체가 그래요.
Chapter 3사랑받는 동료의 비결 
보통 승부욕이 센 선수들은, 적도 많고 마찰이 많죠. 근데 오재현 선수는 동료 선수들한테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더군요.
초반에 딱 1년 차였을 때는 진짜 힘든 시기도 있었어요. 신인왕 받았을 때였는데, 당시 팀 성적은 8등이었거든요. 혼자 돋보이니까 그게 싫었던 사람들이 있었나 봐요. 그러다 보니 서운한 일이 생기고 그러더라고요. 그땐 방에서 혼자 울고 그랬어요.
와, 그런 시기도 있었군요.
그때 주동자 같았던 사람들이 지금은 팀에서 다 나가고 없어요. 그냥 자기 거 묵묵히 하면서 저를 믿어줬던 사람들은, 끝까지 저한테 힘이 되어줬죠. 지금은 다 너무 잘 지내고요.
농구도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팀에 잘 적응하는 것도 중요하거든요. 저는 특히 계속 막내였다 보니까, 농구 외적으로도 형들한테 잘하려고 정말 노력 많이 했어요. 더 많이 다가가려고 하고, 소소한 심부름도 해서 형들 좀 더 편하게 해드리려고 하고. 그런 것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받아들여진 게 아닐까 해요.
구단 팬분들 중에는 ‘패스를 잘 안 한다’고 불만을 표하는 분들도 계신 것 같아요.
욕 많이 먹었어요. 이 사람한테는 패스 많이 하는데, 다른 사람한테는 잘 안 한다고. 형들하고 이런 얘기 많이 해요. 우리가 야구했으면 이렇게까지 욕먹진 않았을 거라고. 야구는 각자 잘하는 게 좀 더 중요한 종목이니까요. 농구는 하나의 공을 5명이 나눠요. 매 경기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죠. 특히 가드는 그걸 조율해야 하는데, 그래서 정말 힘든 자리긴 해요. 모두를 만족시키는 플레이란 건 없으니까요.
지금 저희 팀에 선형이 형이라고 최고 베테랑 가드도 있는데요. 선형이 형조차 그런 부분이 쉽지 않다고 많이 얘기하세요. 본인이 잘하면 욕심낸 것처럼 보이고, 다른 사람들이 잘하면 내가 너무 활약을 못했나 자책하게 되니까요. 밸런스에 어떤 정답이 있는 게 아니다 보니, 자기 생각을 밀고 나가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구단 팬분들의 지적을 받을 땐, 죄송하죠. 저도 잘 하고 싶고, 또 팬분들한테 사랑받고 싶은데 아직 제가 좋은 밸런스를 못 찾은 것 같아요.
모두를 만족시키는 플레이란 건
없으니까요.
정답이 있는 게 아니다보니,자기 생각을 밀고 나가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오재현 선수는 타 구단 선수들과도 가깝게 잘 지낸다고 알고 있어요. 농구는 몸싸움도 참 중요한데, 친한 선수를 만나면 까다롭진 않나요? 괜히 감정이 상할까 걱정될 수도 있고요.
전혀요. 훨씬 재밌어요. 대표팀을 갔다 오다 보니, 다른 팀 잘하는 사람들과도 아무래도 친해지게 되는데요. 매 경기가 뭔가 승부하는 것 같고, 더 기대되더라고요.
오히려 감정은 안 친한 선수들이랑 할 때 더 격해질 수 있어요. 선수들끼리는 다 느껴지거든요. 농구로서 그런 건지 아니면 나한테 감정적으로 대한 건지, 나를 위험하게 하려고 한 건지.
몸싸움을 과격하게 한다는 평판이 있는 선수를 만날 땐, 어떻게 대응하는 편인가요?
선수들마다 성향이 다 다른데요. 저는 절대 안 지죠. 바로 응징해요. 전 그런 거 좋아하거든요.
오, 응징하면 도움이 돼요?
좋아하던데요? 아, 전 그런 것도 많이 했어요. 상대편 누가 저희 팀에 거칠게 굴면, 제가 가서 혼내주고 “형, 나 잘했죠?” 이러고요. 형들이 엄청 웃어요. 팀 분위기도 좋아지고요.
오재현 선수는 경기 2시간 전에 코트 일찍 도착해서 준비한다는 말이 있더라고요.
다 형들 영향이에요. 제가 얘기 듣는 걸 좋아해서, 잘하는 형들 졸졸 따라다니면서 물어보고 배우거든요. 프로 와서 보니까, 형들이 원래 시간보다 일찍 나와서 운동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같이 하고 싶어요” 해서 따라다니다 보니까 제 루틴이 된 거예요. 영준이 형이랑은 맨날 2시간 반 전에 미리 나가서 운동하고 준비해요. 이제 거의 5년 됐죠.
후배들도 이제 생겼을 텐데, 후배들이랑은 어때요?
여전히 막내라인이긴 하지만 저도 동생들이 생겼죠. 제가 먼저 다가가는 건 부족한데, 먼저 다가오는 친구들한테는 마음을 많이 여는 편이에요. 제가 형들한테 정말 많이 받았기 때문에 그만큼 똑같이 해주려고 하죠. 소고기 같은 것도 좀 사주려고 하고요.
근데 농구선수들 많이 먹지 않아요? 돈 너무 많이 나올 것 같은데.
그래서 한 번에 3명 정도씩만 끊어서 데려가요. 한 번에 다 데리고 가면 너무 감당이 안 되니까.
Chapter 4은혜를 갚는 사람 
부모님과도 각별하다 들었어요. 과거 인터뷰에서 부모님 빚 이야기를 하셨더라고요.
프로에 얼리 드래프트로 빨리 오게 된 게 대학 등록금 낼 돈이 없어서였어요. 대학 3학년 때 집이 어려운 상황인 걸 처음 알게 됐어요. 부모님이 부족함 모르게 농구 시켜주셔서, 그런 줄도 몰랐던 거죠.
그때부터는 이거 없으면 우리 집 안 돌아간다는 절박함이 있었어요.
부모님 빚을 오재현 선수가 다 갚으셨다면서요. 무례한 질문입니다만, 원망스러운 마음은 없었나요?
전혀요. 전혀 밉지 않았어요.
저희 아빠가 친구 같은 아빠가 꿈이셨대요. 그래서 저는 외동인데도 한 번도 외로움을 느낀 적이 없어요. 어릴 때 저는 부산에 있고, 부모님은 다른 지역에 계시고 그랬는데 주말마다 내려오셔서 저랑 이틀 동안 계속 놀아주시고, 또 올라가시고 그걸 매주 반복하셨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저는 정말 못할 것 같거든요. 학생 때 운동할 때도 뱀 머리 같이 비싼 것도 엄마가 몸에 좋은 거 해준다고 무리 많이 하셨어요. 당시 형편을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어떻게 그게 가능했는지 이해가 안 가요.
저한테 그렇게 사랑을 주셨는데, 이것도 못하겠어요. 엄마 아빠가 돈 때문에 많이 힘드셨는데, 그건 무조건 제가 갚아드릴 테니 그냥 편하게 행복하게만 사셨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그만큼 더 간절하게 했고, 연봉도 인상되고 하다 보니까, 앞도 안 보이던 길이, 결국은 끝나더라고요. 지금은 부모님이랑 셋이 너무 행복하게 지내요. 쉴 때도 저는 주로 부모님이랑 카페 가고 그래요. 정말 친구처럼 지내요.
신인 시절, 한창 성적이 부진할 땐 출전이 두렵다는 말을 하셨더라고요.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도망치지 않을 수 있었나요?
전희철 감독님이 잡아주셨어요. 그때 당시에 저희가 챔프전일 때였는데요. 제가 슛을 던지는데 링을 못 맞추겠더라고요. 링이 진짜 ‘요만해’ 보이더라고요. 제가 너무 못 하니까, 감독님은 계속 기용해 주시는데 저는 마음이 너무 힘들더라고요. 저 빼달라고, 그냥 벤치에서 응원하겠다고 말씀드렸죠. 그랬더니 감독님이 “그래? 그럼 너 그냥 스타팅으로 먼저 나가라”라고 하시더라고요.
와, 그거 너무 어려운 결정 아닌가요?
그러니까요. 그 중요한 게임에서 “너 그런 마인드야? 너 그럼 먼저 나가서 10분 동안 너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나와” 이렇게 얘기하시더라고요. 이게 맞나 싶더라고요. 근데, 그때 딱 깨어난 것 같아요. 나가기 전까지 무섭다가 나갈 때 되니까 와, 이제는 진짜 되돌릴 수도 없는 거예요. ‘그냥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나와야겠다’ 했는데, 그때 슛이 다 들어가 버려가지고 저희가 잡았죠. 그때가 지금도 생각이 많이 나요.
감독님은 제가 조금만 힘들어해도 딱 알아주시는 분이에요. 선수로서 믿고 따라가게 되는 분이죠. 도망치지 않은 건 정말 감독님이 크죠.
프로 선수들 중에는 종목 불문하고 자기 운동에만 집중하는 분들도 많죠. 근데 어떤 선수들은 이 모든 게 궁극적으로는 팬들을 위해 존재하는 거라는 사실, 즉 업의 본질을 이해하며 프로 생활을 해나가는 것 같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그런 선수들이 멋있다고 생각하고요. 오재현 선수는 팬들한테 잘하기로 유명하더군요.
일단 저는 경기장 갔을 때 제 유니폼 많은 게 보기 좋아요. 제가 이 팀에서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고 볼 때마다 벅차죠. 그러니 당연히 친절하게 사진 찍고, 사인해 드리는 건 기본이죠. 당연히 선수가 할 도리라고 생각하고요. 그거 외에 더 잘해드릴 게 없나 고민을 많이 해요. 경기장 자주 나오시는 분들한테는 제가 입었던 유니폼, 신발 이런 것도 더 많이 드리려고 하고.
궁금해졌는데, 그런 건 다 세탁하고 주나요?
저는 당연히 세탁하고 드렸는데, 모르겠어요. 세탁하지 말고 달라는 분들도 너무 많더라고요.
오, 흥미롭군요.
팬미팅도 구단에서 제가 처음으로 기획해서 했거든요. 제 오래된 팬분한테 만들어달라고 부탁드려서 했는데 그게 반응이 너무 좋더라고요. 저희 팀에서 갑자기 다 따라 하더라고요. 다들 팬미팅 해요, 지금은. 저는 그래서 뭐 또 다른 거 해드릴 것 없을까, 생각해 보고 있고요. 팬분들이 있어야 저도 있는 거니까 뭐라도 더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죠 항상.
Chapter 5대가를 치를 각오 
악플 좀 찾아봤거든요. 제가 다 화나던데요. 본인 악플들 찾아보세요?
이젠 잘 안 봐요. 근데 부모님은 보시거든요. 상처를 많이 받으시는 것 같아요. 보지 말라고 해도 어떻게 안 보겠냐고 하시더라고요.
프로 처음 왔을 때는 깜짝 놀랐어요. ‘와 이 직업은 욕을 정말 많이 먹는 직업이구나’ 싶더라고요. 악플도 그렇지만, 미디어도 무섭거든요. 사실 제가 저연봉 선수일 때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제가 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면서, 못한 날은 욕도 더 먹고 대신 잘했을 때는 칭찬도 더 듣게 되고 하는 것 같아요.
악플이 심한 시기에는 어떤 마음으로 경기장에 들어가세요?
처음엔 위축도 많이 되고 그랬어요. 근데 막상 경기장 가잖아요? 제 유니폼이 진짜 많아요. 저를 응원해 주는 사람이 너무 많은 거죠.
내가 악플 몇 개 때문에 경기를 잘 못하거나 출전 안 하면, 이렇게 경기장에 제 유니폼 들고 와 주신 팬들은 뭐가 될까 싶더라고요. ‘아, 나를 응원하는 사람은 다 여기 있구나’ 경기장 가보면 딱 느껴져요. 그러다 보니까 경기장 가면 너무 신나요. 진짜 내 팬들 사이에서 뛰고 있는 느낌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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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힘들진 않아요?
근데 이런 것도 감수 못하면 당연히 이 연봉 받으면 안 되죠. 제 나이에 이 정도 연봉을 받는 게 흔한 건 아니잖아요. 저는 제가 누리고 있는 거에 비하면 이 정도는 힘든 게 아닌 것 같아요. 나중에 애가 생겨도 농구선수 시켜도 좋을 만큼 전 이 직업이 좋아요.
제가 더 올라가려면, 더 큰 수모를 겪어야 돼요. 지금보다 더 욕먹어야 되고, 경기에 저 때문에 져 보기도 하고, 저 때문에 이겨 보기도 하고 그래야 돼요. 그런 경기를 많이 해야 결국에는 더 좋은 선수가 될 수 있어요.
제가 더 올라가려면,더 큰 수모를 겪어야 돼요.
지금보다 더 욕먹어야 되고,저 때문에 경기도 져보고
저 때문에 경기도 이겨보고.
Epilogue 
자기다움을 찾고 싶은 분들에게, 오재현 선수만의 비결을 하나 전해준다면요?
저는 시도하지 않으면 실패한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무조건 뭐든 해봐야 성공이든 실패든 결과가 나오잖아요. 저는 뭘 하든 욕을 먹더라도 일단은 시도해 봤으면 좋겠어요. 시작하기가 두려워서 시도하지 않으면 그건 무조건 실패니까요. 저도 늘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어떤 선수가 되고 싶어요?
편견을 깨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일단 프로 처음 왔을 때 수비만 잘한다는 인식이 있어서 그 틀을 깨고 싶었어요. 그러다 보니 ‘어? 얘 돌파도 잘하네’라는 인식을 만들었고, 그다음에는 슛도 잘 넣고 싶은 선수가 되고 싶어서 슛 연습을 또 많이 했죠. 그랬더니 ‘슛도 좀 늘었네’라는 얘기를 들었고요. 작년에는 리딩도 늘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보통 리딩은 선천적으로 타고난다고들 하거든요. ‘어떻게 늘었냐’ 이런 얘기도 많이 해주시더라고요.
저는 사람들의 그 안 된다는 편견을 깨고 싶은 게 있어요. 아직 2라운더에서 MVP 나온 적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사람들은 MVP 어떻게 받겠냐 하겠지만, 저는 결국에는 국가대표도 이뤄냈잖아요. MVP도 꼭 보여주겠다는 생각을 전 늘 하거든요. 안 된다고 하는 걸 하는 게 재밌어요. 지금까지도 우여곡절은 있어도 하나씩 깨왔으니까, 빠른 시일 내에 더 갈고닦아서, 2라운더 최초로 MVP를 노리는 게 목표입니다.
안 된다고 하는 걸하는 게재밌어요.
의심하는 시선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요?
한때 ‘쟤가 잘 되면 손에 장을 지진다’ 공언했던 분들도 있어요. 상처도 받았지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저는 늘 더 잘하고 싶은 사람이었거든요. 어차피 보여주면 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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