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처럼 소심한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콤플렉스를 갖고 자라난다. 남들 앞에 나서는 건 당연히 싫어했고, 내가 주목받는 것조차 극도로 꺼렸다. 시내버스에서 벨을 누르기가 민망해 몇 정거장 놓치는 건 일상이었고, 옆자리에 앉을 친구가 없었기에 늘 수련회나 수학여행을 두려워했던, 너무나 작은 심장을 가진 아이였다.
하지만 이 기질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바로 미술 시간. 그리기는 아니었고 만들기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때의 나는 왜인지 또래보다 손으로 만들어내는 일에 비교적 능숙했다. 항상 빨리 해냈고, 나름 잘 만들어냈다. 그랬더니 그토록 싫어하는 주목을 받게 됐다. 하지만 전과 다르게 기분이 좋았다. 내가 아닌, 내가 만든 것이 주목받아서 그랬던 듯싶다. 남들과 같은 ‘말’로 표현하는 것보다 말을 대신할 ‘무언가’로 표현하는 것이 나만의 ‘어떤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최초의 순간이었다.
그 능력을 알아본 다른 친구들은 언젠가부터 나에게 미적 감각을 외주로 주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친구에게 보낼 러브장을 대신 꾸며주거나, 친구들의 새 학기 교과서에 예쁜 글씨로 이름을 대신 써주는 것 같은 일들. 그게 소문이 나서 모르는 친구들까지 찾아와 부탁하는 모습을 보고,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조금 요망한 생각을 한다. 펜으로 직접 꾸민 카드를 크리스마스에 장당 100원을 받고 팔아본 것이다. (나의 인생 첫 세일즈!)
덕분에 재능을 제공한 후 고맙단 말이나 재화로 돌려받는 기쁨을 누구보다 일찍 깨닫게 되었다. 다른 친구보다 인기가 적어도, 에너지가 부족해도, 말솜씨가 없어도 내가 만들어낸 것으로 대신 사랑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목격한 것이다. (늦게나마 자랑해보자면 카드가 좀 불티나게 팔리긴 했다.) 그렇게 나는 부족함이 꼭 결핍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의 어떤 기질이 평균에 못 미친다면, 그 미달된 능력은 어디 가지 않고 다른 능력에 붙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스스로가 눈치채줘야 한다.
나에 대한 눈치를 키워가기 시작하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을 둘러싼 공기를 읽는 감각도 함께 자라났다. 기본적으로 소심한 심장들에는 뉘앙스 파악과 공기를 읽는 능력이 있으니까. 겉으로는 말수가 적고 목소리가 작아 보이는 사람들의 머릿속 공장은 대부분 풀가동 중이거든. 이 단어가 좋을까? 첫마디를 뭐라고 뱉어야 자연스러울까? 어떤 타이밍이 좋을까? 저 사람은 지루해하는 것 같네, 옆 사람이 물을 다 마셨으니 더 가져와야겠다 등 비언어적 상황과 주변 공기를 읽는 내면의 능력이 더욱 발달한다.
세상이 ‘눈치’라고 부르는 이것이 계속 키워지면 결국 ‘인사이트’가 된다.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몰래 들어가보는 능력이 생기는 것이다. 메시지를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인사이트는 필수 덕목이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고 브랜드 또한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카피라이터는 그동안의 히스토리와 사람들의 경험에서 미싱 링크를 눈치채야 한다. ‘기능 좋은 세탁기’를 광고하고 싶은 브랜드와 ‘새로 나온 세탁기’를 구매하고 싶은 소비자 사이에서 ‘좋아하는 옷을 오래오래 입고 싶어서’와 같은 욕망의 이유를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이는 외면의 언어보다 내면의 언어가 발달한 작은 심장을 가진 사람이 기질상 훨씬 유리했다. 이렇게 작고 소심한 심장을 가진 나는, 내가 가진 기질이 나의 효능감으로 전환되는 순간을 눈치챈 후 모든 마음을 카피하려 들기 시작했다.
소심한 심장에는
뉘앙스 파악과 공기를 읽는 능력이 있다.
눈치라고 부르는 이것이 발달하면 인사이트가 된다.
카피라이터라고 특별한 것을 보지 않는다. 오히려 특별한 것만 보는 사람이었다면 모두에게 던질 수 있는 말을 못 쓰지 않을까. 그래서 누군가 “어디에서 영감을 얻으세요?”라고 묻는다면 그냥 “매일 보고 듣는 것들”이라는 재미없는 답을 건넨다. 영감은 “안녕하세요, 저 영감인데요”라고 나를 찾아오지 않는다. 내가 찾아가서 “너, 나의 영감이 되겠구나”라며 알아봐줘야 한다. 영감은 늘 곳곳에 도사리고 있기에.
그래서 늘 사람 한 명은 하나의 필터라고 생각한다. 같은 것을 봐도 그것을 어떻게 소화시키느냐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같은 사람을 같은 직장에서 경험해도 누구에게는 좋은 사람, 누구에게는 나쁜 사람이 되는 걸 보면 사람마다 각자의 필터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받아들이는 재료의 특수함에 기대는 것보다 내 필터가 담긴 캐릭터를 만드는 편이 좋다. 그것이 카피라이터마다 특색을 만들더라. 어떤 카피라이터는 기능적인 글을 잘 써서 제약 광고를 만날 때 날아다니고, 어떤 카피라이터는 따뜻한 글을 잘 써서 브랜드의 가장 감동적인 면모를 잘 발견한다. 또 어느 카피라이터는 이야기꾼이라서 긴 호흡의 영상에서 실력을 발휘하고, 어떤 카피라이터는 말장난의 대가이기도 하다. 그것이 몇 번 쌓이면 “저 친구는 저걸 잘해”가 된다. 자신이 하나의 장르가 되는 것이다.
나의 경우, 상대의 입장을 고려하는 태도에서부터 나만의 필터를 만들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닌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사람이고 싶었고, 그게 카피라이터가 해야 할 일이라고 내심 이 직업의 정의를 내렸던 것 같다. 예를 들어, ‘내가 29CM에 브랜드를 노출하고자 하는 브랜드사의 대표였다면?’ 하고 생각해보는 것이다. 그러면 한 글자 한 글자가 더 소중해지지 않나. 제품의 특징을 잘 드러내면서도 고객이 선택할 만한 근거를 어떻게든 만들어내고 싶지 않았을까, 상상하면서 쓰는 시간이 쌓이니 그게 나의 특색이 되었다.
내 책을 출간한 이후부터는 간절함이라는 필터도 더해졌다. 책 한 권이 세상에 탄생하기까지 그렇게 많은 시간과 인력이 들어가는지 몰랐다. 책 한 권을 팔기 위해 출판사와 서점이 그렇게 고군분투하는지도. 아이러니하게도 책을 낸 이후 서점은 나에게 전쟁터로 느껴진다. 선택받기 위해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는 현장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29CM에서 나는 누구보다 브랜드에 빙의되어 간절한 마음으로 카피를 작성했다. 콘텐츠 하나, 노출 구좌 하나가 얼마나 소중한지 나도 경험했기 때문이다.
나는 카피라는 도구를 통해 브랜드와 고객을 이어주는 중매 역할을 하고 있다고도 생각한다. ‘둘이 잘됐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으로 매칭 확률을 높이기 위해 매번 애쓰는 내 모습을 보며 누구보다 촘촘한 애정의 필터가 있음도 알게 되었다. 세상에 떠다니는, 누구에게나 주어진 정보를 나의 애정 필터에 통과시켜 특별한 색을 입히는 일. 그것도 카피라이터의 일이기도 하다. 공포영화는 누구도 아닌 나홍진 감독에게 맡기고 싶지 않은가.
기본적으로 MD가 전해준 정보를 기반으로 카피를 작성하지만, 정보가 부족하다면 브랜드사의 홈페이지를, 그래도 없다면 브랜드사 인스타그램을, 그래도 없다면 소비자의 후기를, 여전히 없다면 브랜드 대표의 SNS 계정을 들어가서라도 힌트를 얻는다. 조금이라도 다른 브랜드와 달라 보일 그 브랜드만의 언어와 소구점을 찾기 위한 시간을 들이는 것이다. 필요한 이들에게 잘 전달되길 바라면서. 잘 전달되어 한 명의 고객이라도 더 해당 브랜드와 상품을 선택해주길 바라면서.
때로는 ‘그냥 해보는 것’도 나만의 필터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질은 양에서 탄생한다는 말도 있지 않나. 돌아보니 회사가 준 일 말고도 다른 걸 꽤 많이 했다. 페이스북 페이지 ‘내가 광고회사 힘들다 그랬잖아’부터 인스타그램 계정 ‘도보마포’, ‘일본광고’, 몇 권의 책과 강의 등 혼자서 많은 것을 기획하고 만들어냈다. 어떻게, 어떤 생각으로 했냐 묻는다면… 모두 ‘그냥’ 시작한 것이다.
‘내가 광고회사 힘들다 그랬잖아’는 정말 광고회사가 힘들어서, 그 힘든 마음을 실소로라도 풀어놓고 싶어서 시작했고, ‘도보마포’는 용산에서 합정으로 이사 오면서 동네가 너무 사랑스럽기에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어 시작했다. ‘일본광고’는 카피라이터가 되고 싶어 줄곧 모아왔던 일본 카피들을 나만 보기가 아까워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그걸 예쁘게 봐준 사람들이 책을 내자 했고 강의를 해보자 했다.
아마 철저한 계획 아래에 시작했다면 지쳐서 그만뒀을 것이고, 재미도 없었을 것이다. 단 한 순간도 ‘이걸 해야 하나?’라는 고민을 한 적은 없다. 그냥 내가 좋아하고 제일 나 같은 것을 했을 뿐이다. ‘도보마포’를 만드는 데는 1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마포구가 좋으니 마포구 로컬 페이지를 만들겠다는 다짐 이후 바로 계정을 팠다. 고민이 있었거나 완벽한 시작을 원했다면 아마 아직도 못 만들고 있었을 거다. 직장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머리만 커져서, 무언가를 시작하려 할 때 안 되는 것들이 먼저 보이기 시작한다. 그럴 땐 눈 딱 감고 하고 싶은 마음을 좇아야 한다. 그게 안 되면 그 정도의 마음이었던 것이다. 다시 생각해도 나이키의 ‘Just do it’은 정말 잘 지은 슬로건이다. 때론 그냥 해야 한다. 하는 수밖에 없다.
“모든 마음은 카피할 수 있다.” 이 문장은 직업인으로서 늘 믿고 있는 일종의 신념 혹은 나의 슬로건 비슷한 것이다. (올해 나온 책의 부제이기도 하다.) 양산에서는 건강을 바라는 마음을, 지역 전통 술에서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해진 운동화에서는 승리에 대한 열망을, 이온음료에서는 청춘만이 가진 에너지를, 보조배터리에서는 여행의 즐거움을, 반지에서는 행복과 책임감을, 비누에서는 피로까지 씻겨 내려가길 바라는 마음을, 요가복에서는 마음까지 유연해지길 바라는 마음을, 접시에서는 가족을 소중히 하는 마음을, 책상에서는 새로운 시작을 향한 두근거리는 마음을, 카피라이터는 알아채야 한다.
이 마음들을 알아채기 위해 나는 늘 반걸음만 더 들어가보자고 다짐한다. “왜 양산을 쓸까? 더우니까”는 표면적인 해석이다. 한 번 더 물어보자. “왜 더위를 피하고 싶을까?” 이유는 여러 가지로 추측할 수 있다. 기분 좋게 출근하고 싶으니까, 애써 한 화장이 망가지니까, 몸은 해변에서 태우고 싶으니까. 마음속 욕망을 읽어내면 내가 소구하는 물건은 ‘해결책’이 된다. 해결책은 이 물건을 사기에 충분한 근거를 마련해준다. 카피라이터는 바로 이 마음을 카피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마음을 자주 들켰으면 좋겠다. 마음껏 카피할 수 있도록. 이때 마음속까지 닿기 위해 필요한 건 다름 아닌 ‘대화’다. 상업적인 글을 쓰면서도 내가 언제나 사람들과 대화한다고 생각하고 질문을 떠올려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대화는 서로가 서로에게 마음을 들키고, 필요한 걸 주고받는 관계일 때 비로소 가능하니까. 이것이 내가 정한 카피라이터와 대중의 이상적인 관계 설정값이다.
‘워라밸’이라는 오래된 말이 있다. 하지만 그 멋진 말처럼 나는 워크와 라이프를 무 자르듯 나누지 못한다. 친구들과 나누는 대화와 고객과의 대화에 차이를 두고 싶지 않다는, 고집 같은 신념 때문이다. 그 믿음으로 여태 진심을 담아 일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믿을 것이다.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가는 쪽이 받을 수 있다고. 시간과 체력이 허락하는 한, 앞으로도 가능한 많은 마음을 카피하고 싶다.
나를 채운 조각들 | 슈로, 강철의 연금술사, 박서보,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 데뷔의 순간, 약간의 거리를 둔다
매해 트렌드를 좇다 보니 숨 가쁘게 따라다녀도 결국 휘발되는 것이 과연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 든다. 브랜드의 목소리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이런 고민이 깊어질 때 찾는 것은 ‘어떻게 하면 사랑받을 수 있을까’에 관한 서사, 철학, 태도다. 사랑은 주로 그런 것들에 머문다.
슈로(SyuRo) 수년 전 어느 잡지에서 보고 찾아간 편집숍. 도착하자마자 웰컴 티를 내어주는데, 그 맛이 참 좋다. 이곳은 물건의 이야기를 제안하는 느낌을 준다. 그 물건을 사고 싶어지는 게 아닌 물건과 살고 싶어진다. 슈로에 다녀와서 그런 공간을 만들고 그런 글을 쓰고 싶다 생각했다.
‘강철의 연금술사’ 완성도 높은 이야기와 철학적인 소재를 좋아한다면 추천한다. 대사, 연출, 떡밥 회수, 캐릭터, 서사, 메시지 외에도 많은 것을 배웠다. 이 만화를 쓴 작가는 어쩌면 내 스승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박서보 미술에 큰 관심이 있지 않다가 우연히 다큐를 보았다. 작품을 해석하는 능력은 없지만 과정에서 얻은 영감이 크다. 명상과 수행과 사유를 기반으로 한 그의 일생은 모두의 영감이 되기에 충분하다.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 정치를 새로이 생각해보게 한 예능. 마치 인류의 기원부터 사회라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축약해 놓은 것 같다. 유일하게 매년 정주행한다.
〈데뷔의 순간〉 17명의 영화감독을 인터뷰한 책이다. 꿈을 향한 시작에 앞서 어떤 마음가짐을 취해야 할지, 허접한 순간을 어떻게 견뎠는지를 보면 (죄송하지만) 위안받는 느낌이다.
〈약간의 거리를 둔다〉 몇 번을 읽었는지 모른다. 삶에 대한 태도를 비관과 동시에 희망으로 그려낸다. 힘든 하루의 끝에 이 책을 펼치는 행위는 마치 탈출구를 여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