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하는 말이 있다. ‘라이프스타일’. 여태까지 주어진 것들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며 죄 안 짓고 살아왔다. 그러는 동안 자연스레 자리 잡게 된 삶의 방식이 있는데, 그런 저마다의 ‘삶의 방식’을 갑자기 영어로 부르더니(Lifestyle) 방을 무인양품 스타일로 꾸미고 신선한 올리브유와 어쩌구저쩌구 식재료로 지중해식 식단을 먹으며 Chill & Hip하고 Healthy한 현대인이 되라 한다(What?). 이처럼 멀쩡한 단어가 갑자기 영어로 둔갑하면 하여간 뭘 사고 돈 쓰라고 부추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싫다.
두 번째 싫어하는 말 ‘IP(지식재산권)’. 어떤 작품이 영화, 드라마, 뮤지컬 등으로 뻗어나가고 있으며 몇 주 연속 1위, 몇 개국 수출, 팝업스토어 몇만 명 방문까지 어썸한 지표와 수익을 내고 있으니 하루빨리 IP를 확보하시옵소서 하는 이야길 들을 때마다 생각한다. 작가는 어디 갔지? 나는 좋은 작품을 만나면 그 작품을 만든 사람이 궁금해지는데, IP란 말 앞에선 만든 이는 사라지고 숫자만 남는 듯하다.
연이은 불호 발언을 끝낼 진짜_최종_제일_싫어하는말.hwp(이 글은 출판인들이 애용하는 한글로 작성 중이다)을 해야겠다. 그것은 ‘덕업일치’다.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무언가를 직업과 일치시킨다는 말로, 좋아하는 일 하면서 먹고산다는 의미다. 이 말 앞에선 일의 힘듦에 대해 호소해도 “그래도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잖아”라는 마법의 한마디가 모든 걸 일축해버린다.
틀린 말은 아니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이 좋다. 만화와 그것을 책으로 만드는 일을 좋아한다. 퇴근하고 집에서도 만화를 보냐는 물음을 들을 때마다 의아하다. 만화는 일을 하기 훨씬 전부터 보던 거고, 내가 떠올릴 수 있는 가장 어린 시절에 맨 처음 접한 ‘이야기’의 모습이다. 만화 보는 게 지겨워질 일은 없다. 힘든 건 일이지 만화가 아니다.
전엔 이를 부정했다. 일에 미쳐서 워라밸도 버린 채 미련하고 안 섹시하게 사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 그랬다. 근데 난 내 일이 좋고 더 잘하고 싶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온 세상 사람들이 만화를 보길 바라기 때문에 아직 만화를 안 본 사람들도 읽고 싶어지는 만화를 만들 거다(물론 거기엔 일정에 맞추어서 빠르게, 오탈자가 없으며 가능한 한 많이 팔리는 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잇속도 포함되어 있다. 이 마음가짐이 없으면 온 세상 사람이 만화를 못 본다). 게다가 그것이 어느 정도는 실현 가능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 진짜로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먹고살고 있다니? 대체 이게 무슨 복이냐?
거기엔 많은 이유가 있다. 꿈에서나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었던 창작자들과 일하며 작품에 나를 투여하는 경험은 늘 벅차다. 어떤 작가님은 내게 “나보다 더 내 작품을 좋아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혹은 “나보다 더 내 작품을 잘 아는 것 같다”라고도. 그건 작품을 책이라는 형태로 만드는 과정에서 당연해지는 일이다. 편집하는 동안 작품 속 모든 컷, 그 컷을 구성하고 있는 컷선, 그림, 말풍선, ‘슈웅’ ‘털썩’ 하는 의성어 하나까지도 수십 번을 본다. 한 작품을 이 정도로 보면 별생각이 다 들고 별게 다 보인다. 이를테면 이 말풍선과 저 말풍선의 행간이 다른 것도 보인다. (디자이너: 죄송.) 지금 편집 중인 만화도 어떤 컷과 대사가 몇 권의 몇 페이지쯤에, 좌수에 실려 있는지 우수에 실려 있는지도 기억난다. 하물며 말줄임표를 한 번 썼는지 두 번 썼는지까지도. 이건 대단한 노력이나 유별난 수고를 들이는 게 아니라 좋아하면 저절로 일어나는 일이다. 좋아하면 말풍선 행간값이 다른 게 알아서 눈에 보인다는 뜻이다.
언젠가부터는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도 큰 애틋함을 느끼게 되었다. 만화 일이란 게 그렇다. 만화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굳이 이 일을 하지 않는다. 왜 어떤 만화는 고딕체가 어울리는데 어떤 만화는 명조체가 더 잘 붙을까? 만화책은 가볍고 값이 저렴해야 하는데 어떤 종이를 써야 할까? 이런 생각을 한참 하고 있으면 디자이너가 고딕과 명조의 세계를 알려주기도 하고, 제각기 다른 종이를 쓴 책들을 들고 펼쳐보기도 한다.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일을 하고 있다는 감각은 안정감과 힘을 주었고 덕분에 두렵거나 외롭지 않았다. 좋아하는 걸 넘어 좋아하는 것에 성의를 다해 책임을 지려는 사람들에 둘러싸인 환경에서 많은 걸 해낼 수 있었다. 그들과 열심히 일했다고 생각은 해도 내가 잘했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다.
하지만 이런 나는 매일 아침 침대에서 일어나며 생각한다. ‘이 침대를 일어서면 인간 김해인은 죽고 직장인 김해인이 태어난다.’ 일하는 건 매일 이런 재탄생의 각오를 해야 할 만큼 힘들다. 어떻게 매일 이렇게 새롭게 더 힘들어질 수 있냔 말이다? 만화가 아무리 좋아도 돈 버는 일의 기본 성질이 그렇다. 그럼 뭘 해야 돈을 주냐?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공간에 늦지 않게 도착해서 하루 8시간 동안 나의 시력, 손목, 허리 등 공력을 바치면 돈을 준다. 그러는 동안 나는 급속도로 늙고 건강을 잃는다.
돈 버는 슬픔은 평가를 받는 데서 오기도 한다. 치일업덕? 사무실에 멀뚱히 앉아서 저는 만화가 좋습니다! 정말 좋아합니다!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원고를 찾아서 교정과 교열을 보고 아무 탈 없이 책을 제작하여, 궁극적으로 그 책이 많이 팔려야 돈을 준다. 말 그대로 덕이랑 업을 일치시켜야 돈을 주는 거다. 그럼에도 결국은 잘 팔려달라며 물 떠다 놓고 만화의 신에게 빌곤 한다. 책 만들 때 순수하게 좋은 순간은 첫 원고 받아서 볼 때와 표지 일러스트 볼 때 정도다. 이 두 가지 순간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시간은 시시포스처럼 일을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먹고살려면 시시포스가 될 수 있다, 이거다. 그치만 기획을 위해 만화를 검토하며 ‘재미는 있지만 영 안 팔리겠군’ 이딴 생각을 할 때면 그냥 다 떠나서 조금 슬프다. 어떤 만화가 훌륭하다면 그것은 그 만화가 많이 팔린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일 수도 있다. 그리고 대체로 나는 그런 만화들의 편을 들어왔다. 많이 팔리지 않았어도 어떤 날의 누군가에겐 꼭 필요한 작품일 수도 있고, 애초에 세상에 내보이기 전에 그 작품이 정말로 팔릴지 어떨지를 훤히 보인다는 듯 단정하는 것 자체가 무례하고 건방지다고 생각한다. 그건 작품에 대고 할 짓이 아니고 내가 사랑하는 것에 대해 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만화의 신이 진짜 있다면 그에게 천벌 받을 짓일 거다.
그렇게 싫어하는 단어를 열거하며 자본과 숫자놀음에 염증을 호소했지만 어느 순간 만화에 대한 감상과 평가를 숫자로, 매상으로 하고 있는 내가 정말 별로다. 일이란 게 다 그런 거겠지? 여태 그 ‘다 그런 것’이 덕과 업을 일치시킴에 있어 이루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럽단 이야기를 한 거다. 그리하여 8년 차 직장인이자 한 만화 편집자는 어느 날 모처럼 일찍 출근해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앉아 천장을 보다가 생각했다.
만화 꼴도 보기 싫다….
만화가 꼴도 보기 싫어졌으니 어쩌나. 아 당연히? 만화 여전히 사랑하죠. 동료들에게 감사하죠. 근데 마음속에 뭔가 팟 하고 끓어올라 감동에 처박혀 만화의 신에게 저는 이제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습니다, 오직 이대로 당신에게 귀의하겠습니다, 라고 말하고 싶어지는 그런 거? 그런 게 없다고 하면 뭔 말인지 아시겠어요? (경이롭게도 보통의 직장인들은 그런 거 없어도 알아서 일 잘하고 있다.)
그렇게 죽상을 하고 기계적으로 일하던 어느 날이었다. 여자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여학교의 별〉이라는 만화로 홍대의 모 카페에서 이벤트 카페를 열기로 결정했다. 마침 스승의 날이 다가오니 그에 맞추기로 한 것인데 하필이면 내가 가장 취약한 ‘데드라인(5월 15일)이 있는 업무’를 하게 됐다. 매번 이렇게 시간과의 사투를 벌이며 이날까지 한 번만 부탁드리겠습니다, 두 번 다시는 이러지 않겠습니다(세 번은 하겠다는 소리다), 제발, 제발이라는 감정을 호소하고 나면 몸의 중요 부위(영혼 같은 거)가 훼손된 느낌이 든다. 나는 카페가 오픈되자마자 휴가를 내고 칩거에 들어갔다.
주말이었다. 그래도 준비했으니 방문은 해봐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벤트 카페로 향했다. 평소라면 토요일 주말 낮에는 절대 가지 않는 홍대입구역 3번 출구 근처의 카페. 사무실에서 계획하고 예상한 그대로 꾸며진 카페였다. 그런데 이미 수십 번 정도는 본 카페인데, 사무실에서 지겹도록 본 그 카페인데도 너무 낯설었다. 아예 모르는 곳에 온 것 같았다. 왜냐하면 그곳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왜 나는 이 현장을 못 떠올렸을까? 카페를 준비하는 동안 이런 것들만 생각했다. 입구 문에 부착할 시트지의 이미지, 실사, 특전의 종류, 크기, 판매 수량과(하물며 유광 코팅, 무광 코팅 여부까지) 전프레*의 배포 방법과 컵홀더의 증정 조건, 제작 수량 같은 것들. 카페를 며칠 동안 운영해야 할지? 기간 동안 몇 명이나 올지? 얼마를 구매해야 특전을 줄지? 몇 개를 준비해야 기간 내에 재고를 여유 있게 유지할 수 있을지? 이런 숫자로 묻고 숫자로 답할 수 있는 것들을.
* 전원 프레젠트의 줄임말로, 행사장에 방문한 사람에게 증정하는 선물.그런데 북적이는 카페를 채우고 있는 것은 사람들이었다. 좋아하는 캐릭터 그림이 붙어 있는 공간을 사진으로 찍고, 좋아하는 캐릭터가 그려진 컵홀더에 음료를 받고 있는 사람들. 좋아하는 작가에게 메시지 카드를 남기기도 하고, 같은 것을 좋아하는 이들끼리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
한 번도 제대로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내가 만든 책을 읽고 웃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 같은 거. 회사에 앉아서 일하고 있으면 책이란 서점이 주문하면 주문한 숫자만큼 나가는 물건처럼만 느껴진다. 그걸 위해 서점에 오고, 책을 찾아 구매하고, 비닐을 뜯고, 한 장 한 장 넘겨 읽고, 마침내 그것을 다 읽고 행복해하는(화내거나 실망할 수도 있지만 그러한 모습조차도) 사람들의 모습은 구체적으로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좋아하는 것을 만지고, 찍고, 보고, 이야기하면서, 재미있어 보였다. 아마 이 사람들에게 오늘은 꽤 괜찮은 날, 어쩌면 제법 즐거웠던 날로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그중 아무나 붙잡고 이게 정말 그렇게 즐거운 일이냐고 묻고 싶었다. 난 왜 그렇게까지 그들이 신기했을까?
좋아하는 것을 일로 하는 사이에 순수하게 좋아하는 방법은 이제 잃어버렸다고, 그런 걸 포기하는 대신에 덕과 업을 일치하기로 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데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걸 보니 그게 아니었다. 잃어버리고 포기한 게 아니라 갚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태까지 살아오는 동안 내내 만화가 나를 너무 행복하게 해줬으니까 이제는 만화로 갚는 거라고. 사람들이 만화로 즐거울 수 있게. 그리고 그들을 보면서 나는 또, 만화에게서 새로운 즐거움을 받는다. 그리하여 어떤 만화 편집자는 평소라면 절대 가지 않을 토요일 주말 낮 연남동의 어느 카페에 앉아 생각했다.
내가 하는 일은 책 만드는 일이 아니었구나.
이 사람들 즐겁게 만들어주는 거였구나.
만화로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또, 만화에게서 새로운 즐거움을 받는다.
만약에 평행 세계라는 것이 있고 잠깐 시공간을 비틀어 또 다른 ‘내’가 있는 세계로 갈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어린 시절의 나를 보러 가겠다. 그날은 친척 모임 때문에 사촌 집에 갔던 날이다. 숫기도 없고 따분했던 어린 나는 아무도 없는 사촌오빠 방으로 몰래 들어와 혼자 앉아 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어느 영화를 따라 한다. 어린 나를 둘러싸고 있는 방의 책장들 뒤로 가, 기억을 더듬어 어떤 책의 책배를 툭툭 두들긴다. 아마도 〈나루토〉 1권. 아니면 〈드래곤볼〉 1권. 멀쩡했던 책장에서 별안간 떨어진 물건을 집어 든 어린 나는 그것을 읽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확인하고 원래 있던 세계로 돌아오며 나는 생각한다. 재밌게 읽어라. 만화 편집자가 되든지 말든지는 너 알아서 하고. 난 벌써 돼버렸다…. 근데 만화 편집자가 되는 것과 관계없이, 아마 너는 앞으로 그걸 엄청 좋아하게 될 거야. 나는 네가 그걸 즐겁게 읽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잠시 다녀가.
나를 채운 조각들 | 이와아키 히토시
만화가 이와아키 히토시(Hitoshi Iwaaki)가 〈히스토리에〉로 2025년 제49회 고단샤 만화상을 받았다. 〈히스토리에〉는 60대 중반에도 펜과 종이로 수작업을 고수하는 이와아키 작가의 건강 문제로 장기 휴재 중인 만화인데, 편집부는 작가의 지속된 건강 악화와 휴재로 인해 “노력하고 있지만 기대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솔직히 나도 최신 권을 읽고 이 만화의 완결을 보겠다는 마음을 접었다. 여기까지 한 챕터를 훌륭히 마무리한 것만으로도 충분하고 더 이상의 〈히스토리에〉를 보지 못하여도 상관없다고. 그것이 만화가가 아닌 한 사람의 건강하고 무사한 삶을 위한 것이라면 말이다. 그런데 고단샤 만화상을 받은 작가는 놀라운 수상 소감을 전해주었다. 현재 40년 넘게 해온 수작업을 조금씩 디지털 작업으로 전환하고 있고 태블릿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덕에 요즘은 완결에 대한 희망을 품고 있으며, 기대해달라곤 말 못 해도 이대로 나아가겠다고 전했다. 60대 중반인 자신에게 디지털 작업을 가르쳐주는 만화 학교 선생님께 감사하다는 이야기로 맺은 이 소감을 보고 나는 그의 만화를 볼 때만큼이나 대략 정신이 멍해졌다.
젊어서는 〈기생수〉를 그리고 유수의 만화상도 받은 데다 명예와 권위도 있겠다, 몸도 아프고 힘든데 완결까지 한참 먼 것이 분명한 작품을 위해 다시 나아가겠다는 의지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70대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학원에 다니며 처음으로 쥐어보는 태블릿 펜슬로 만화를 그리는 그 동력은 어떻게 샘솟는 걸까? 그러니까 아직도? 그 나이에도, 이미 엄청난 만화들을 수없이 그렸으면서도, 앞으로 더 만화를 잘 그리고 싶다고? 그런 게 가능하다고?
아, 알겠다. 이건 그거다. 언젠가 내가 하는 일이 지겹고 해볼 만큼 다 해본 것 같고 한계가 온 것 같아서 때려치우고 싶을 때 이와아키 작가가 어떤 심정으로 만화 학교를 갔을지를 떠올려야겠다. 그것은 성실도 아니고 겸손도 아니며 의무도 아니다.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