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세상의 기획자들

오늘의 질문이 
내일의 가게를 만든다 

결핍이 시그니처가 되는 순간에 대하여 
박정수
2025.9.23
박정수
일과 삶의 태도를 진지하면서도 유쾌하게 탐구하는 아이스크림 가게 대표. 카이스트를 졸업한 뒤 현대차와 두산중공업에 13개월 동안 다녔다. ‘나다운 삶’에 대한 오랜 질문 끝에 2017년, 놀이동산 같은 아이스크림 가게 ‘녹기 전에’를 오픈해 현재 염리점과 낱점을 운영 중이다. 2024년, 일하는 방식과 접객의 철학을 녹인 책 〈좋은 기분〉을 출간했다. ‘녹기 전에 사장’의 줄임말인 ‘녹싸’라고도 불린다.
Editor’s Comment
우리는 무엇이든 물으면 곧장 대답해주고, 손쉽게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생성형 인공지능의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질문 ㅡ‘나는 어떤 삶을 원하지?’ ‘무엇이 나다운 선택이지?’ㅡ 에는 그 어떤 프로그램도 대신 답해줄 수 없다. 오직 자기 자신과 마주할 때에만 진실된 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튤립의 에세이 시리즈 ‘나라는 세상의 기획자들’은 이 물음에 주체적으로 응답하며 자기 삶을 기획해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삶의 현장에서 부딪히며 길어 올린 질문과 선택 끝에 피어난 ‘자기다움’의 기록이기도 하다. 이들의 여정이 자기만의 기준을 세우고 싶은 사람들에게 작지만 단단한 좌표가 되어주길 바란다.
두 번째 에세이는 ‘녹기 전에’ 대표 박정수(녹싸)의 이야기다. 좋아하는 일을 오래 이어가는 힘은 어디에서 생겨날까? 아이스크림 가게 ‘녹기 전에’를 9년째 운영 중인 그의 이야기는 단순한 창업담이나 화려한 성공담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업계의 상식이나 뻔한 문법이 아닌, 수많은 질문을 푯대 삼아 자기만의 경로를 개척해왔다. 이 과정에서 ‘녹기 전에’는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처럼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특별한 공간이 되었다. 언젠가 자기만의 브랜드를 만들고 싶은 사람, 내 방식대로 일한다는 것의 의미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그의 이야기 속에서 단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그가 자기 자신을 탐구해온 여정과 터닝 포인트가 된 순간들을 함께 짚어가보자.
그래서 뭐? 
“사람들은 모두 다르게 태어나서, 평생 똑같아지려고 애만 쓰다 죽는다.”
2019년 어느 날, 이 날선 문장을 책에서 마주했을 때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전까지 나는 몇 달 동안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공부하고 정보를 모으고 있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 방향은 남들이 하는 걸 끈질기게 따라가는 일이었다. ‘똑같아지려는 애씀’ 속에 나도 깊이 잠식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때 나는 가게 사정으로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2017년 익선동에서 ‘녹기 전에’라는 아이스크림 가게를 연 지 3년째, 매일 다른 맛을 만드는 것이 우리만의 특색이라 믿었지만 매출은 좀처럼 오르지 않았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작은 디저트 숍 하나만 생겨도 손님이 눈에 띄게 줄었고, 근심은 쌓여갔다.
시간이 남아돌자, 원래는 신경도 안 쓰던 인스타그램의 돋보기 탭을 열기 시작했다. 이게 웬일인가, 그 작은 아이콘이 어느새 내 엄지손가락의 단골 코스가 된 것이다. 그 안에는 멋진 사람들이 각자 방식으로 자신을 증명하는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보는 순간 열등감이 폭발했다. 나는 초등학교 때 미술학원 하루 다니고 울면서 그만둔 사람인데, 지금 몸담은 F&B 시장은 시각적 결과물이 대세를 좌우하지 않는가. ‘이 안에서 과연 내가 버틸 수 있을까?’ 끝없는 의심이 시작됐다.
그 무렵부터 새벽마다 기획·디자인·마케팅 책을 미친 듯이 읽었다. 두세 시간 자고 카페에 앉아 밑줄 긋기를 반복했다. 책 속에서 충만감을 느꼈고, 가게가 잘 안 돼도 ‘이렇게까지 했으니 곧 나아지겠지’ 하는 근거 없는 낙관에 기대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잘 알게 되었다’는 착각이었다.
착각은 기묘한 방향으로 흘렀다. 내가 멋지다고 생각하고 선망하기 시작했던 업계 사람들의 관계망까지 분석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밤낮으로 눈팅하며 ‘나도 그들 사이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하는 환상에 빠졌다. 정작 내 자리는 점점 더 흐릿해지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말이다.
나는 분명 나로부터 한참 멀어진 상태였다. 남이 하는 게 좋아 보이면 따라 했고, 멋져 보이는 건 내 일에 욱여넣었다. 어느 순간부터 좋아 보이는 것을 좇지 않고는 내 일을 해나갈 수 없게 되었다. 내 기준이 없는, 이도 저도 아닌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 무렵 마주한 문장이 벼락같았다. “사람들은 모두 다르게 태어나서, 평생 똑같아지려고 애만 쓰다 죽는다.” 지난 몇 달간의 새벽 독서를 단숨에 무너뜨리는 각성제 같았다.
책을 덮고 걸으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 책들, 결국 각자의 방식대로 살아갔다는 얘기잖아. 그렇다면 나는, 이걸 이렇게 읽어서 뭘 얻으려는 거지?”
그날의 독후감은 단 네 글자였다.
“그래서 뭐?”
그 순간, 지난 몇 달의 밑줄들이 조용히 다시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그제야 알았다. 내가 책 속에서 발견했던 건 정답이나 방법론이 아니라, 각자가 자기 삶 속에서 스스로를 증명한 예시들이었다는 것을.
그 뒤로 자기 부정을 멈췄다. 못나도, 부족해도 나는 나였다. 오히려 그 결핍이 내 정체성을 만든다고 믿게 됐다. 업계에서 ‘저런 것도 없이 저렇게 날뛰네?’ 하는 포인트. 그 당돌함이야말로 내가 나일 수 있는 증거였다.
이 깨달음은 ‘녹기 전에’의 운영 방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남들처럼은 절대로 할 수 없는 인테리어나 완벽한 비주얼에 힘쓰는 대신 매일 새로운 맛을 만들고 작은 기획을 자주 펼치는 과정에 집중했다. 손님이 “오늘 어떤 맛이 있나요?”라고 묻는 날이면, 이제는 당당하게 말했다. “오늘은 이 맛들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특별한 기분을 원하신다면 이걸 드셔보세요.” 내 방식이 오히려 차별점이 되기 시작했다.
컵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가게는 로고가 박힌 컵을 썼지만, 우리는 버려진 밀짚으로 만든 무지 컵을 썼다. 로고를 만들 예산도 자신도 없어 시작한 일이었는데, 단골들이 “로고 없는 컵을 보면 ‘녹기 전에’인 줄 안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결핍이 시그니처가 되는 순간이었다.
중요한 배움은 손님들에게서도 얻을 수 있었다. 혼자 와서 먹는 아이스크림 한 컵은 자기 자신을 위한 시간이었고, 그 모습은 ‘나로 돌아가는 일’ 그 자체였다. 아이스크림과의 독대를 즐기는 그들을 지켜보며 깨달았다. 부족한 건 정보나 기술이 아니라, 나를 돌아볼 시간이라는 걸.
그렇다. 내 일 안에 정답이 있었다.
‘저런 것도 없이 날뛰네?’ 하는 포인트. 그 당돌함이야말로 내가 나일 수 있는 증거였다. 
질문은 방향이 된다 
“내가 이 일을 하게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 못 했는데, 그걸 지금까지 하고 있다니.”
살다 보면 이런 고백을 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우연처럼 시작했지만 이제는 자기만의 모습으로 해내고 있는 사람들. 그 말은 로맨틱한 포장이 아니라, ‘대체 무엇이 나를 이 길로 데려왔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솔직한 회상일 것이다.
나도 그렇다. 가장 힘들었던 시절을 지나 어느새 9년째 아이스크림을 만들고 있다. 그 시작은 어린 시절로 거슬러 간다. 텔레비전, 숫자, 우주, 그리고 아이스크림까지 나는 모든 것을 질문 속에 가두어보곤 했다. 아이스크림을 먹을 땐, 스푼 자국이 난 뽀얀 표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 조용한 관찰의 순간조차 내 안에 오래 남았다.
“시간이란 뭘까?”
답 없는 질문은 메아리처럼 돌아왔고, 쉽게 잊히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그런 질문을 백 번쯤 던지면 열 번은 삶의 선택에 영향을 줬다. 그 축적이 곧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다.
대학에서 전기전자공학을 전공하고 대기업 두 곳을 거쳐도 의문은 남았다. “이게 정말 유일하게 정해진 나의 길일까?” 안정적인 조건도, 좋은 타이틀도 답이 되지 않았다. 점심시간마다 혼자 산책하며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뭘까?”라고 물었다.
그 물음들이 결국 나를 아이스크림 가게로 데려왔다. 하지만 처음 ‘녹기 전에’의 문을 열었을 땐 그저 ‘내게 맞는 선택’이었지, ‘내 방식으로 사는 삶’은 아니었다. “손님들이 좋아해줄까?” “이렇게 하는 게 맞나?” 질문들이 쏟아졌다. 2019년에는 더 절박해졌다. “나는 왜 이렇게 불안하지?” “남들이 왜 나보다 한참 더 나은 것 같지?” 이 질문들은 새벽 독서로 이어졌고, 결국 ‘그래서 뭐?’라는 깨달음에 다다랐다.
이후에도 질문은 멈추지 않았다. 팬데믹 한가운데서 나의 물음은 이것이었다. “이 위기를 기회로 바꾸려면?” 그 답은 의외로 이사였다. 소위 ‘핫’하던 익선동을 떠나, 유동인구가 10분의 1도 안 되는 마포구 염리동 골목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장사는 ‘목’이 생명이라지만, 내게 더 중요한 건 마음 편한 자리에서 내 방식의 기획과 이벤트를 펼칠 수 있느냐였다.
코로나로 이동과 체류가 조심스러웠던 때라, 사람들은 동네를 거닐기보다 집에서 미리 ‘여기는 꼭 가야겠다’는 목적지를 정해 짧게 다녀왔다. 이른바 ‘목적 구매’가 늘어난 시기였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온라인에서 재미난 걸 선보이고, 매장에서 그 약속을 정확히 경험으로 이어주는 가게가 유리했다. 다섯 평 남짓한 작은 아이스크림 가게였지만, 우리는 그 안에 하나의 세계관을 만들었다.
연이 깊은 손님의 도움으로 나무위키에 ‘녹기 전에’ 등재되었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는 ‘녹씨’라는 성을 부여해 하나의 가족처럼 불렀다. 그림 대회나 악필 대회 같은 유쾌한 이벤트를 열었고, 매달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며 손님들과의 소통의 장을 넓혀갔다. 또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일명 ‘주주채팅방’이 만들어져 수백 명의 멤버가 매장에서 겪은 즐거운 경험을 나누었고, 그분들을 위한 감사제도 마련했다.
온라인에서 이어진 이런 소통 덕분에 우리 가게는 ‘창의성과 재미, 그리고 공감의 요소를 모두 추구하는 곳’이라는 이미지를 얻기 시작했다. 매장을 찾아오신 손님들께는 그 이미지가 실제로 확인될 수 있도록 더욱 정성껏 응대하며 아이스크림을 선보였다. 이렇게 온라인에서의 실험과 오프라인의 리듬을 맞춘 덕분에, 그 시절 매년 두 배씩 성장했다.
또 다른 질문도 이어졌다. “같이 일하고 싶은 동료는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채용과 접객을 새롭게 설계하는 과정은 단순히 사람을 뽑는 절차가 아니었다. 함께 오랜 시간과 가치관을 공유할 동료를 찾는 일이었다. 그래서 흔한 채용 공고 대신 160페이지에 달하는 접객 가이드를 만들었다.
그 가이드는 단순한 안내문이 아니라,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손님을 대하는 태도, 동료들과 함께 만들어가고 싶은 일상의 풍경, 그리고 ‘녹기 전에’가 담고 싶은 기분의 지향점에 대한 기록에 가까웠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공감과 피드백을 보내주었다. 심지어 채용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들까지도 “이런 생각을 나눠줘서 고맙다”는 이야기를 건네주었다. 그렇게 쌓인 경험은 ‘일하는 방식과 접객의 철학을 공유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창작물이 될 수 있다’는 확신으로 이어졌고, 결국 접객 가이드 형식의 책 〈좋은 기분〉의 출간으로까지 이어졌다.
최근에는 “지금 세대뿐 아니라 다음 세대에게도 우리 가게가 동네에 어떤 좋은 흔적을 남길 수 있을까?”를 물었고, 그 질문 끝에 성북동 한 자락에 ‘녹기 전에 낱점’을 열었다. 다음 세대인 아이들이 밤중에도 평화롭게 뛰어노는 곳, 그 아이들의 성장 과정을 함께하며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곳에서 가게를 오래 이어나가고 싶었다. 번화가가 아니라 많은 가정의 안락한 보금자리를 품고 있는 성북동을 택한 이유였다. 단순 확장이 아니라 동네의 맥락과 인연을 살리려는 선택이었기에, 그 공간에 있던 가게의 이름 ‘낱’을 점포명으로 이어받았다.
해답 없는 질문은 불안을 낳는다. 하지만 그 불안은 무력감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삶을 똑바로 마주하게 한다. 키르케고르(S. Kierkegaard)는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이라고 했다. 앞이 보이지 않아 아득하지만, 그 낭떠러지 앞에서만 나를 똑바로 볼 수 있다.
“나는 내가 할 수밖에 없는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내가 자주 읊조리는 이 문장은 농담 같지만, 가장 중요한 진실이다. 나는 타인이 될 수 없고, 거울 속 나를 있는 힘껏 유지하는 게 최선이다. 그 최선을 지키기 위해 오늘도 묻는다. 그리고 그 질문에 행동으로 답하려 한다. 질문이 삶의 결을 만들고, 행동이 그 결을 따라간다. 불확실성 속에서 질문에 행동으로 응답하기. 그게 내가 믿는 ‘나다운 일’의 정의다.
불확실성 속에서 
질문에 행동으로 응답하기.
그게 내가 믿는
‘나다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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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정의다.
내게 일이란 작은 행성을 빚는 행위에 가깝다. 생각을 모아 ‘작은 핵’을 만들고, 그 핵이 단단해지면 중력이 생긴다. 그러면 중력에 이끌린 사람들이 자연스레 그 궤도에 들어온다. 그들이 내 세계의 일부가 되면서 삶은 확장된다.
나는 오늘도 나만의 행성에 살을 붙인다. 불안한 질문들이 나를 조금 더 자유롭게 만들기를 바라면서. 은은하지만 내 빛을 내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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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채운 조각들 | 그리스인 조르바, 종묘, 저글링
첫 번째는 니코스 카잔차키스(Nikos Kazantzakis)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다. 머릿속이 복잡할 때마다 조르바의 웃음과 단호한 대사가 떠오른다. “그딴 건 집어치우고 춤추자고!” 그는 철학을 설명하지 않고 ‘사는 것 자체가 철학’임을 몸으로 보여줬다. 나는 그를 통해 진짜 자유는 결국 ‘나로 사는 것’임을 배웠다.
두 번째는 종묘다. 종묘는 번잡한 일상 속에서 내 안의 불안감을 잠시 눕힐 수 있는 장소이자, 진짜 나로 돌아오는 길목이 되어준다. 직선과 여백, 바람과 나무, 돌의 온기 속에서 내 혼란은 원형으로 돌아갔다. 빌딩 숲 사이에 자리한 고즈넉한 숲에서 나는 ‘지금 내게 맞는 선택은 무엇일까’를 차분히 되묻곤 했다.
세 번째는 요즘 나를 안정시키는 저글링이다. 공 하나가 땅에 떨어질까 말까 하는 순간, 온 신경이 집중되며 불안이 줄어든다. 종묘의 고요와 조르바의 춤을 합쳐 놓은 듯한 단순한 동작. 머릿속이 어지럽고 방향을 잃은 날엔 일부러 작은 공 세 개를 꺼내 든다. 혼란 속에서도 나를 현재로 데려오는 방법이다.
이 셋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내 삶을 흔들고, 다듬고, 중심을 잡아주었다.
Editor. 박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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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가·작가
아이스크림 가게 ‘녹기 전에’ 대표(2017~), 저서 〈좋은 기분〉(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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